기억의 착각도 노년의 재미 중 하나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기억의 착각도 노년의 재미 중 하나

글 : 이근후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2020-08-17

몇 달 전 일이다. 무심코 TV를 틀었더니 그 날이 4.19혁명, 60주년 되는 날이라고 한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되었나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60주년이라니 나도 깜짝 놀랐다. 내가 대학교 졸업반일 때 4.19가 일어났으니 벌써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리곤 갑자기 멍청한 착각을 하나 떠올렸다. "아, 나도 이제 4.19 세대의 살아있는 최고령자이구나..." 4.19혁명에 참여했던 학생들 가운데에 당시 대학 졸업반이었으니까 새삼스럽게 60주년을 맞아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내가 멍청하다고 표현한 것은 그 감정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최고령이라고 한 말은 착각이었기 때문이다. 최고령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고, 4.19 당시에 내가 졸업반(의과대학이라 일반대학보다는 2살이 더 많다)이었으니 그때도 이미 혁명대열에 나선 학생 중에서는 최고령이었다. 4.19혁명이 성공하여 정권이 바뀌면서 해마다 조촐한 기념식을 했을 때마다도 나는 고정된 최고령자였다. 그런것도 모르고 60주년을 맞아서 내가 비로소 이제야 최고령자가 되었구나 하고 착각을 한 것이다. 




우스운 착각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기억의 착오가 많다. 내가 정년퇴임하기 이전의 일인데, 산악회 선배 한 분과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었다. 월요일에 내가 외래에서 환자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점심 약속을 해놓고 왜 안 나와?"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월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이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월요일에 약속 장소에 나오셔서 나를 기다리셨다니 황당하다. 


내가 병원에 재직하고 있는 동안 월요일은 항상 외래를 보는 것으로 고정을 해두었기 때문에 누구와도 외부에서 점심 약속을 하지 않는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정상 할 수도 없다. 지금 약속장소에 나와 있는 선배가 기억을 착각한 것인지 내가 나도 모르게 무심결에 월요일에 약속을 잡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일과 후 퇴근 시간에 만나자 하여 저녁을 같이 했는데 그때 누구의 착오인지 논쟁이 벌어졌다. 


나는 월요일에 환자를 보기 때문에 지금까지 누구와도 약속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내세워 내 주장이 맞다고 이야기했다. 선배님은 모든 것을 기록해두고 기억을 하는  습관이 있다며 자기도 착각했을 리가 없다고 완강히 주장했다. 그러니 자연히 두 사람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나는 월요일에 약속을 했을 리 없다고 하고 선배는 월요일이 맞다고 하고. 이 평행선의 주장은 끝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기록을 좋아하는 선배님께서 자기 수첩을 꺼내더니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수첩을 보니 월요일에 나와 점심 약속이 있다고 기록 되어있었다. 그러니 자기의 말이 맞다고 주장한 것이다. 나도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약속을 기록한 수첩이 있어 꺼내어 보았다 신기하게도 내 수첩에는 화요일에 적혀있었다. 


그래서 둘이 또 서로 자기수첩이 맞다고 옥신각신했다. 즐거운 다툼이다. 아마도 이것을 정리해보면 내가 월요일에 만나자고 했을 리는 확률적으로 전무하다. 그런데 왜 월요일에 적혀 있을까? 선배님은 선배님 마음에 그렇게 들렸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 주제로 서로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합의를 봤는데, "노인이 되면 어떤 말을 해도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적나보다", "이젠 우리도 늙었나 보다"라는 결론으로 매듭을 지었다. 요즘 가족들과의 대화가 잦아서 옛날이야기를 해보면 기억 자체가 모두 착각이다. 


자기 편한 대로 기억하다가 발생하는 착각들


그 중 하나는 산악회에서 등반을 갔는데 가족이 함께 참여를 한 적이 있다. 이야기를 해보니 등반에 참여를 했다는 것은 기억은 하는데 겨울에 했다는 가족도 있고 여름에 했다는 가족도 있고 봄이라고 하기도 하고 각각 기억이 제각각이다. 이것도 말로만 해서는 평행선이다. 결말이 나지 않아서 산악회의 기록을 찾아보았더니 여름 등반이었다. 왜 똑같은 등반을 하고도 이렇게 등반한 계절의 기억이 다를까? 선배님 말씀대로 어떤 말이든 어떤 사건이든 상황이든 자기 편리한 대로 듣는다는 것이 맞을 거 같다. 


자기 편리한 대로 기억을 하다 보니 그게 바로 착각이다. 한 가지 또 우스운 착각을 이야기하면 친구와 코리아나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연락을 할 수 없어 결국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다음날 서로 연락을 해보니 내 친구는 조선호텔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단다. 나는 코리아나 호텔이라고 했는데 이 친구는 코리아나를 친절하게 번역까지 해서 조선호텔로 기억을 했었나 보다. 


또 이런 기억의 착오도 있다 내가 아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한 것이 하나 있는데 대구의 칠성동에 있는 종합운동장을 처음 만들고 조경을 할 때 플라타나스 나무를 학교에서 학생을 동원해서 심은 적이 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을 데리고 거기 가서 "이 나무는 아빠가 중학교 다닐 때 심은 것이란다"하고 자랑을 했다. 아들이 어른이 되어서 쓴 글을 하나 보니 아빠는 자기를 데리고 대구의 칠성동에 있는 종합운동장에 플라타나스 나무를 가리키면서 자기가 심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자기는 들을 바도 없고 칠성동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종합운동장은 더욱이 가본 적도 없다고 한다. 


왜 이런 기억의 착오가 있을까? 아들이 칠성동이 어딘지도 모르고, 종합운동장에 가본 적도 없다면 아들의 기억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기억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감동을 아들에게도 전하고 싶어했던 소망이 내가 말을 했다고 착각하게 했음이 분명하다. 내가 받은 감동이란 이렇다.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러 갔는데 아버지가 따라오셨다. 수험장에 들어가려는 나를 보고 학교에 심어진 버드나무를 가리키면서 "저 버드나무는 아빠가 학교에 다닐 때 심은 거란다"라는 말을 하셨다. 그 말이 나에게 감동적이었기 때문에 나도 그와 비슷한 감동을 아들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졌었고, 결국 그런 말을 아들에게 하지도 않은 채 전했다고 착각만 하고 살았다. 아마도 소망도 간절하면 그런 착각이 생기나 보다.




내가 전공을 하는 정신과에서 치료를 하는 방법중의 하나가 꿈을 분석해서 치료하는 방법이다. G.Jung(융)이 그런 치료법을 개발했는데, 환자로부터 꿈 이야기를 적어오라고 해서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론이나 실제에서 이런 방법을 사용해보면 환자들이 꿈을 왜곡하거나 착각하여 기억해오는 경우가 참 많다. 꿈을 연구한 많은 정신분석학자들도 꿈을 의식 수준에서 기록하면 꿈을 꾼 그대로 기록할 수 없단다. 작고 큰 차이는 있지만, 착오가 있다는 것이다. 이 착오는 꿈을 꾼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식대로 받아들이고 자기에게 유리한 식으로 기억하면서 생긴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조작적인 왜곡이나 착각은 아니다.


이런저런 착각을 기억하다 보니 노년에 들어서 부부싸움이 잦다. 싸움이 잦다고 하니 거창한 싸움이라고 생각을 할는지는 모르나 그런 것은 아니고, 아주 사소한 기억의 착오로 서로 자기 기억이 맞다고 주장하는 경우에 생기는 다툼이다. 이 다툼은 결론이 없다. 서로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기억이 착오가 아니라고 믿는다. 이런 기억의 착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연령에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노인이 되면 기억의 착오가 더 많은 거 같다. 거짓말도 3번하면 정말처럼 들린다고 하는데, 이 기억의 착오도 착오인 줄 모르고 자꾸 주장을 하다 보면 우리가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던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어차피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컴퓨터의 저장된 것의 출력과는 다르다. 사람은 자기 기억을 자기 편리한 대로 무의식적인 조작을 하지만 컴퓨터는 입력된 그대로 가감 없이 출력된다. 생각해보면 이 기억의 착오라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서는 무의식에 담고 받아들이기 쉽고 즐거운 경험은 자기 편한대로 자유롭게 기억하는 것이 컴퓨터와는 다르다. 나이 들어 기억의 착오를 두고 티격태격 다투어 보는 것도 나이 든 사람의 재미로 생각을 한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그래서 기억의 착오라는 것은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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