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치매임을 인정할 수 있을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나는 내가 치매임을 인정할 수 있을까?

글 : 김봉석 / 작가 2020-09-14

지난 7월 열린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나탈리 에리카 제임스 감독의 <유물의 저주>라는 호주영화가 있다. 원제는 'Relic'인데, 번역된 제목을 보고 오래된 물건에서 악령이 나오거나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 속의 '유물'은 오래되어 세상에서 잊히고 버려지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었다. 노인이 그렇듯이.




호주의 멜버른에 살고 있는 케이는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 에드나가 실종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딸 샘과 함께 시골에 있는 고향 집을 찾은 케이. 다행히 3일 만에 에드나는 무사히 돌아온다. 케이는 치매가 시작된 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기려고 한다. 하지만 샘은 반대한다. 케이와 샘의 갈등이 깊어지는 사이 에드나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끔 폭력적이 된다.


공포영화인 <유물의 저주>에서, 할머니의 변화는 초자연적인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오래된 물건들이 쌓여 있던 구석방은 헤어날 수 없는 미로로 변한다. 할머니는 갑자기 기괴한 동작으로 움직이며 케이를 쫓는다. 그러나 <유물의 저주>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공포의 존재로만 보지 않는다. 이전에 증조부는 숲속의 오두막집에서 고독하게 혼자 살다가 죽었다. 증조부가 죽으면서 오두막집은 버려졌고, 문과 창문 등 일부만 가지고 와서 에드나와 케이가 살았던 집을 지을 때 사용되었다. 낡고 쇠락한 것들은 버려진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칠 일이다.


<유물의 저주>는 노인 문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일을 하는 케이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볼 여유가 없다.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려는 케이를 샘은 비난한다. 별다른 이유 없이 얼마 전 일을 그만 둔 샘은 아직 젊다. 자신을 키워준 엄마이나 당연히 케이가 돌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돌보면서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케이는 샘이 야속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책한다. 저마다 처지가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유물의 저주>를 보며 무섭지는 않았고, 답답했다. 영화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상황 때문이었다. 내가 케이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솔직히 나도, 일을 하면서 혼자 치매에 걸린 부모를 돌볼 자신이 없다. 나도 케이와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반대로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치매임을 인정할 수 있을까? 가족 누군가 나를 돌보겠다고 할 때, 나는 동의할 수 있을까? 내가 판단할 수 있다면 스스로 요양원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오래전에 봤던 일본영화 <내일의 기억>(2007)이 떠올랐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사에키는 건망증이 심해졌다고 생각하여 찾은 병원에서 알츠하이머진단을 받는다. 나이가 50밖에 안 되었는데. 실수가 많아지며 일을 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사에키는 결국 직장도 그만두게 된다. 아내인 에미코와 함께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기억을 잃어버린다. 기이한 것은 오래전 기억부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기억부터 사라진다. 금방 내가 했던 일이 기억나지 않고, 엊그제 잡았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난달 만났던 친구를 잊어버린다. 같이 일했던 동료, 후배들의 이름과 얼굴을 하나씩 잊어버린다. 그리고 함께 살았던 가족들마저 잊어버린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그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취미를 갖고, 손을 움직이는 일을 하면 좋다고 하여 동네에서 도예를 배우기 시작한다. 선생도 친절하고, 도자기 만들기도 좋았다. 그런데 배신을 당한다. 강습비를 밀렸다는 도예 선생에게 바로 준다. 그런데 수첩을 보니 이미 며칠 전에 준 기록이 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후, 자신이 했던 모든 일을 적는 수첩이었다. 도예 선생은 혹시 하며 떠본 것이고, 기억을 불신하는 사에키는 바로 주었다. 사람 좋고 친절한 도예 선생이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 사에키는 분노하기보다 절망한다. 병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약자가 되어버린 사람을 속이고 이용하는 사람들. 그들은 대단한 악인이 아니라 매일 살아가는 일에 열중하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악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끔 눈을 감는 착한 사람들.




알츠하이머에 걸렸을 때 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리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며 폭주하거나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사에키는 별 것 아닌 걸로 화가 나고, 말리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사에키는 절망한다. 이미 자신의 정신도, 육체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알츠하이머는 사에키의 모든 것을 점령하며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었다. 기억을 해야지,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지, 아무리 결심해도 소용없다. 내가 의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언제나 건강하고, 제정신이라 생각해도 노화는 많은 것을 쇠퇴시킨다. 치매, 알츠하이머가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몸도, 마음도 젊었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치매는 노화를 넘어 지금까지 만들어 온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갉아먹는다.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내 의지로 컨트롤할 수 없다. 너무나 비극적이다.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에게는 더욱 비극적이다. 사에키는 자신의 기억을 잃어갈 뿐이지만, 아내는 남편이 자신과 함께 했던 기억을 모두 잃어가며 타인이 되어 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니까.


결국 사에키는 스스로 요양원을 찾아보고, 자신의 발로 들어간다. 아내를 위해서도 그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둘만이 행복하자고 해도 소용없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내일의 기억>을 보면서, 사에키가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자책하는 장면에서 먹먹해졌다. 그리고 그의 선택에 동의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후일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알츠하이머란 진단을 받았을 때, 차라리 죽어버릴까, 라고도 생각했던 사에키에게 의사가 말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십수 년이 지난 뒤부터는 끊임없이 쇠락해가는 존재라고. 인간의 세포는 10대 후반 정도까지만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이후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인간, 생명체의 본성이다. 태어남에서 죽음까지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고, 다만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빨리 오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것은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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