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고 나온 56년생 김승복씨는 지금 어디 있을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경기고 나온 56년생 김승복씨는 지금 어디 있을까?

글 : 송양민 / 가천대학교 명예교수 2018-06-07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요즘 정년을 맞아 잇따라 은퇴를 하고 있다. 712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4.6%를 차지하는 거대한 인구집단이다. 명문고를 졸업한 베이비부머 3,500명의 인생 궤적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측면을 진단해본다. 명문고 졸업자를 선택한 이유는, 이들 학교의 동창회 활동이 비교적 활발해 베이비부머들의 현재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상대적으로 얻기 쉬웠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들이 살아온 지난 60여년의 세월은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유년기에 ‘빈곤의 시대’를 거쳐, 청년기에 ‘군사독재 시대’를 경험했고, 중년의 시기에 ‘민주화 시대’를 맞이했으며, 장년기에 ‘IMF 경제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경제적 충격을 경험했다. 장기 경기침체와 기업구조조정의 바람 속에서, 베이비부머의 후반 인생은 씁쓸하게 풀리고 있지만, 그들의 꿈이었던 ‘빈곤 극복’과 ‘민주주의’를 성취했다는 점에서 행복한 세대라고 할만하다. 베이비부머가 태어났던 1955년부터 올해(2018년) 사이에, 한국의 경제규모(GDP)는 무려 1000배나 커졌고, 1인당 국민소득은 65달러에서 3만 달러로 높아졌다. 짧은 기간 동안, 이런 놀라운 경제적 성취를 이뤄낸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러나 베이비부머들이 유년기를 보냈던 1950, 1960년대는 하루 세끼 먹기가 매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경제적 궁핍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고향(농촌)을 떠나, 사람과 일자리가 많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사 가는 것이었다. 가계형편 때문에 서울로 이사 못간 사람들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자녀들 가운데 똑똑한 아이들을 골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대도시 명문 고등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이렇게 하여 전국 주요도시엔 경기고, 경남고, 부산고, 경북고, 광주일고, 제물포고, 전주고, 대전고 같은 명문고가 탄생했다. 이들 명문고에 진학한 베이비부머들은 ‘가난한 집안의 재건’ 임무를 띠고 열심히 공부를 하여, 서울 명문 대학으로 진학했다. 서울 유학을 갈 형편이 안 된 아이들은, 등록금이 싼 지방 명문 국립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어린 시절 ‘수재’ 소리를 듣던 명문고 졸업생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해 경기고, 경복고, 경남고, 경북고, 광주일고, 대전고 등 6개 명문고 졸업생 3500명의 인생을 추적해보았다. 조사는 6개 고교 동창회의 도움을 얻어 이뤄졌다. 고교별 조사자 수와 졸업년도는 <표 1>과 같다. 




 오랜 기간의 현장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필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3500명의 베이비부머들은 현재 수도권에서 56%, 지방에서 44%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어날 때는 지방에서 태어났으나, 지금은 거의 절반이 수도권으로 이동해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지역에서 취직을 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의 비율은 70%에 달했다. 이는 대학 공부를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크게 갈린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또 6개 명문고 출신 베이비부머들은 92%가 대학에 진학하고, 나머지 8%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취업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던 1970년대는 대학진학률이 20~25%선에 머물렀던 시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공고, 농고)를 졸업한 후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취직을 했다. 이런 사회적 트렌드와 비교해볼 때, 명문고 출신들의 대학 진학률은 아주 높은 것이다.


 명문고 출신들은 부모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고 명문대학에 대거 합격했다. 각 학교마다 매년 650~750여명의 학생이 졸업하여, 이 가운데 130~300명이 서울대에 합격하고, 50~200여명이 연세대와 고려대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시는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자녀를 명문대학에 보내는 것은 가문(家門)의 지위 향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했다. 고향 마을 어귀에 플래카드가 붙고 동네잔치가 벌어졌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베이비부머들의 운명이 크게 엇갈렸다는 점이다. 대학졸업 후 30~35여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돋보이는 직업군은 의사와 선생님, 공무원이다. <표 2>는 6개 명문고 졸업생들이 60세가 되기 전(통계 분석 시점 2008년)의 직업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현직과 퇴직여부의 구별이 어려웠던 회사원은 분석대상에서 제외했다. 고교별 직업 분포를 보면, 경북고 1977년 졸업생 가운데서는 선생님이 101명(교수 84명, 교사 17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의료 94명(의사 91명, 약사 3명), 공무원 53명, 판․검사와 변호사 30명 순으로 나타났다. 경북고 직업분포에서 공무원과 판·검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은, 역대 TK정권에서 경북고 인맥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호남의 명문고인 광주일고도 비슷한 추세를 보여, 선생님이 106명(교수 74명, 교사 32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의료 105명(의사 100명, 약사 5명), 공무원 45명 순으로 나타났다. 광주일고 졸업자들의 특징은 의사가 단일 직업 기준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남 출신들의 경우 성공 가능성이 낮은 공직보다는, 생계 걱정 없는 전문직업인 쪽에서 인생의 승부를 거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전고(1978년 졸업)는 졸업생 가운데 선생님이 113명(교수 53명, 교사 60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의료 71명(의사 63명, 약사 8명), 공무원 33명, 언론사 12명 등으로 나타났다. 대전고의 특징은 교사와 언론인이 다른 고등학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인 경기고는 우리나라 수재들이 선호하는 직업군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1975년 졸업생의 직업 분포를 보면, 교수가 무려 143명에 달했고, 다음이 의사 66명, 판·검사와 변호사 36명 등으로 나타났다. ‘공부 잘하면 선생님 된다.’는 세간의 속설이 경기고의 사례를 볼 때 딱 맞아 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명문고 졸업생들이 의사와 교직, 공무원에 대거 진출한 데는 부모세대가 겪은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자녀들의 대학 진학과 학과 선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쪽은 부모들이다. 193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부모 세대들은 젊어서 6·25전쟁을 겪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취직자리가 부족해 크게 고생을 했다.이런 경험을 한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확실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의사와 약사, 교사가 되도록 권유한 것은 쉽게 추측이 가는 대목이다. 또 오랫동안 공무원 텃세에 시달렸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사법고시, 행정고시를 보도록 독려를 했고, 이런 자극에 힘입어 많은 베이비부머들이 법대와 상대를 나와 공무원으로 입신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지방고교 졸업자들의 인생 유전이다. 경남고, 경북고, 광주일고, 대전고 등 4개 고교 졸업자들의 주소지를 분석한 결과,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은 65%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수도권에서 생활 터전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들이 서울 주변에 몰려 있어,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한결 쉬웠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4개 지방 명문고 조사에서 나타난 또 다른 발견은,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더라도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은 50~60%가 서울권으로 이동하여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 사람들의 씀씀이가 지방보다 크기 때문에, 자영업을 하는 경우라도 아무래도 서울에서 하는 게 돈을 벌기가 더 쉽지 않았나 싶다.  




 이런 전문직 종사자의 인구이동을 고려하면, 4개 지방 명문고의 경우 졸업자의 55%가량이 현재 수도권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태어나기는 지방에서 태어났지만, 절반 이상이 '서울 사람'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4개 지방고교가 각각 영남, 호남, 충청 지방을 대표하는 고등학교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방의 인재유출 현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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